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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잔인한 표현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인어소년

 

 

作家 몽환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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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호수의 물결이 누군가의 꼬리질에 말려들어가며 몸짓을 따라 소용돌이쳤다. 푸른 비늘과 커다란 꼬리는 수면 위로 종종 모습을 내비쳤다. 나른한 오후의 찬란한 햇살을 머금은 비늘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하얗게 반짝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나풀거리며 뺨을 건드리자, 인어는 간지러운 듯 몸짓만큼이나 유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뱉었다. 크고 작은 포말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곤 채 수면에 닿기도 전에 바스러져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커다란 것을 잡으려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는 순식간에 터지는 것이 빨랐다.

 

길쭉한 팔은 물의 경계선을 뚫고 나와 아직은 따뜻한 햇살과 마주했다. 인어는 호기심을 견디지 않고 꼬리를 살랑여 올라가 수면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처음으로 맞이한 풍광을 관망하는 것은 인어에게 안락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푸른 숲과 조화를 이룬, 약간은 탁기가 서린 하늘은 몽환적이었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 인어의 시야에 들이찬 것은 나루터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루터에 묶인 작은 목선이 은은한 물결을 따라 흔들렸다. 물살을 가르고 나루터에 도착한 인어가 목선에 탑승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올라가려는 순간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철렁한 인어는 순식간에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팔딱거리는 심장에 손을 갖다 대자 박동이 고스란히 제 손 안으로 침투해 마치 손바닥에 심장이 박힌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인어는 영문 모를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며 호수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듯 헤엄쳐 내려갔다. 그리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고요한 적막만이 인어의 유일한 안정제인 듯, 긴장이 점점 풀리는 것을 느끼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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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는 꿈을 꿨다. 제게 날아오는 무자비한 돌에 찢긴 상처에서 터져 나온 선혈은 맑은 호수의 물에 붉고 탁하게 번져갔다. 비린내를 맡자 어지러움을 느낀 인어가 숨을 헐떡이며 수중으로 가라앉았다. 물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폭언이 심장을 얼려 깨부수는 듯했다. 누식된 것처럼 가파른 호흡은 하얀 거품을 만들어냈다. 호수의 심연으로 빠져들어도 거품은 새카매지지 않았다. 선명한 하얀색이 눈부셔서 겁이 날 지경이었다. 차라리 붉은색이었으면 좋을 것을. 겨울의 호수는 혹독하게 잔인했다.

 

 

-

 

 

새벽에는 모두가 죽은 듯,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질 못했다. 인어는 제 꼬리만큼이나 푸른 달이 구름 뒤에 은닉한 채 미약한 달빛을 뿜을 때 즈음에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인어는 붉은 하늘을 집어삼킨 푸른 달의 시간이란 것을 자각하고 수면 위로 올라갔다. 어두우니까 누군가 찾아온다고 해도 저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선. 그저 밤하늘을 즐기고 싶었던 인어는 어제와 같이 안개꽃을 수놓은 황혼을 만끽할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었다.

 

나루터 근처로 헤엄쳐 갔을 때, 일말의 인기척을 느끼곤 무춤거렸다. 인어의 몸짓을 따라 일렁이는 물결이 부드러웠다. 인어는 쥐 죽은 듯 가만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 남자가 나루터에 걸터앉아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적요한 밤을 울리는 달달한 미성에 홀리듯 나루터로 다가간 인어는 남자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 가만 듣고만 있었다. 저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떴을 땐, 남자는 이미 고요한 눈으로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인어는 소름이 돋아 부르르 떨며 요동치기 시작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달빛에 비쳐 몽롱하게 보이는 남자의 눈은 밤하늘보다도 짙고 잔잔했다.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새하얄 정도로 밝은 은발의 머리카락은 일말의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머리카락이 일렁이지 않았더라면, 인어는 남자가 사람이 아닐 것이라 느꼈을지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숨 막히는 정적을 부순 것은, 인어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내가 징그럽지 않나요?"

 

 

왜 이 말이 떠오른 지는 몰랐다. 인어는 말을 내뱉고도 내심 놀랐다. 누군가에게 징그럽다는 말을 들은 적조차 없는데.

 

…남자는 침묵했다.

 

적막에 불안감을 느낀 인어가 달빛에 겨우 보이는 그의 차분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꽃잎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항상 보면서도 물리지 않고 소려한 아름다움을 품었다고 생각했던 별들보다도 그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인어는 생각했다. 어느새 인어에게서 시선을 끊은 남자는 한참을 대답이 없다가 이내 입술을 떼었다. 

 

 

"…밤하늘이 아름다워서, 보러 나온 것뿐이야."

 

 

동문서답을 한 남자에 인어가 갸우뚱거렸다. 그러면서 일단 제게 적대적인 사람은 아니구나, 안심했다. 구름이 달을 먹어버려 사라진 달빛은 남자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게 차단했다. 암흑 속에서 인어는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구름이 걷혔을 때, 그는 없었다. 어쩐지 아쉬움을 느낀 인어는 기다란 팔을 주욱 뻗어 나루터 위로 상체를 걸치곤 꾸물거리며 제 꼬리를 올렸다. 크고 윤기가 흐르는 청색 비단의 꼬리로 인어는 나루터에 걸터앉아 연신 물장구를 쳐댔다. 기분이 좋은지 아이처럼 맑게 웃는 인어는 흩어지는 포말을 가만 바라보았다. 남자의 황홀한 노랫가락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

 

 

엄동설한에 부는 칼바람에 귀가 잘려나간 듯한 혹독한 추위 속, 인어는 심연 속에 물들어있었다. 온몸이 까져 피멍이 들어있었다. 이어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분개한 자들의 외침이 귓전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 또다시 그 꿈이구나. 너무도 선명해 아릿한 심장의 조임마저도 느낄 수 있었다. 인어는 저를 얼려버릴 듯한 추위 속에서 눈을 감았다. 제 몸에 닿는 모든 것들이 몸서리쳐지게 차가웠다. 눈알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충혈된 눈이 뱉어내는 붉은 진주마저도 차가웠다.

 

오늘은 좀 더 빨리, 이 끔찍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인어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저를 향한 비난, 분노, 역겨움,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절실히 통감했다. 그 감정에 동화되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 것만 같았다.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모를 듯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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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호수에 오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남자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별빛이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는 날에도, 항상 나루터를 찾아왔다. 그리곤 가만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인어는 진흙처럼 푹푹 빠져드는 남자의 매력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꼭 저를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것이라는 착각이 일었다. 나루터에 걸터앉아 뽑아내는 그의 섬유한 목소리는 오후의 부드러운 물살을 가를 때만큼이나 따뜻한 안락함을 안겨 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향기였다면, 필연 취했으리.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남자는 잔잔한 노래를 향기처럼 뿜어내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경청하던 인어는 여운이 가시지 못한 채 반쯤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에게 수줍은 미소를 선사함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는 조금만 더 머무르다가 돌아가겠지. 인어는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가 침묵을 깨트림으로써, 인어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름, 알려줄 수 있어?"

 

 

인어는 난감했다. 이름이라니. 그런 건 없었다.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은 인어는 남자에게 되물었다.

 

 

"…당신은요?"

"레오."

"멋진 이름이네요."

"넌?"

 

 

내 이름을 불러주지 못 할 거야. 분명 곤란하겠지. 인어는 생각했다. 아무 단어라도 갖다 붙이려 머릿속을 쥐어짰지만, 긴장한 탓인지 더욱 생각나지 않았다. 레오는 울먹이는 인어의 얼굴을 보곤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학연. 어때?"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였다. 레오는 그 이름이 인어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생긴 이름에 인어는 까르르 웃으며 물속에서 원을 그리며 헤엄쳤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살포시 웃음을 터뜨리자 기어코 들은 인어는 볼을 붉혔다. 알맞게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 달아오른 뺨이 귀여워 한참을 눈에 담은 레오가 내일 찾아오겠다는 기약을 남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쩐지 아쉬움이 남아 보이는 인어를 뒤로한 채.

 

 

-

 

 

이른 시간에 가까워진 둘은 더는 노래 한 곡에서 만남이 그칠 관계가 아니었다. 레오와 만나는 날이 잦아질수록, 학연은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적중했다. 학연이 레오와 서회하는 것을 본 마을 노친네들이 금세 파다하게 퍼뜨린 것이다. 불결한 인어와 만남을 갖는다면서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낮에 호수를 찾아와 돌을 던져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학연은 매일을 악몽의 현실화 속에서 허덕였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제게 부린 행패를 알리기엔 일렀다. 레오가 되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다행히도 레오는 제 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실같은 홍혈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가시처럼 날카롭게 삐죽삐죽 튀어나와 거친 돌덩이를 막다가 홀라당 까진 손바닥에 피멍이 듦과 더불어 질척거리는 피가 흐르는 것 역시. 학연은 물에 닿아 따끔거리는 것을 용케도 잘 참아내었다. 그리고 레오가 자리를 뜨면, 설움과 억울함에 이따금씩 눈물을 떨구며 흐느꼈다. 학연의 눈물은 물에 닿는 순간 진주로 굳어 바닥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그걸 삼킨 호수의 물고기들은 점차 어복을 드러낸 채 부범하는 사체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에 맑던 호수는 탁해져 갔고, 더러워진 호수에선 악취가 풍겼다. 모두 인어의 저주라면서 사람들은 학연을 죽이려 들었다. 호수에 독약을 타고, 작살을 내리꽂아 박고, 그물을 쳐댔다. 개중 한 번에 여러 작살을 던진 것에 학연의 꼬리가 관통당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득 있는 결과를 만들고야 말았다. 학연은 레오를 만나러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매일을 호수 바닥에서 숨어 지냈다. 헤엄치면 꼬리에 박힌 작살이 움찔거려 상처가 벌어지기 때문에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바닥에 웅크려 앉은 인어가 종일 울어 충혈된 눈을 떴다. 제가 떨군 진주가 바닥에 가득 나뒹굴고 있었다. 개중에는 시뻘건 것도 있었다. 붉은 진주와 하얀 진주가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향긋하고도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해댔다. 비릿한 냄새는 붉은 진주에서 나는 악취였다. 깨질 듯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호수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인지 쏟아부은 온갖 극독약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썩어 문드러질 듯했다. 학연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탁해질수록 학연은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아, 죽음의 사신이 기어코 찾아오는구나.

 

학연은 짙게 밀려오는 두려움 속에서 레오의 얼굴을 떠올렸다. 제 마지막 모습이라도 좋다면, 레오가 볼 수 있길. 비참하고 더러운 말로일지라도 저를 뇌 속의 작은 공간에나마 기억해주길. 추잡하고 끔찍한 모습을 뇌리에 박아주길. 그저, 저를 기억해주길.

 

학연은 수면으로 헤엄쳐갔다. 지금 이 느낌이 맞다면, 당신이 나를 보러 와 준 것이 맞다면. 평소보다 농도 짙은 인기척이 몰려들었다. 레오, 당신인가요. 날 보러 와 준 건가요. 우리의 그리움이 이리도 깊어 내가 당신을 알아챌 정도가 된 것인가요. 

 

꼬리가 찢어지는 고통이 온 장기를 헤집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터진 상처에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학연은 안개가 무색하듯 흐려지는 시야 사이에서 희망을 찾았다. 수면 가득 부범했던 그물이 거둬진 것이었다. 아, 역시. 날 만나러 와 준 것이군요. 벅차오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미 독에 오염된 장기가 괴롭다며 피를 울컥울컥 뱉어댔다. 망가진 몸으로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그걸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학연은 조금 더 느리게 꼬리를 저었다. 나루터가 가까워졌다. 레오와 가까워지고 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어떤 인사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잘 지냈을 지, 아픈 곳은 없는지, 날 보고 싶진 않았는지. 순식간에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이 엄청난 기척이 레오라는 것을 확신하고서, 학연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그다. 레오가 서 있다. 나루터에 그가 서 있다.

 

학연은 후드득 눈물을 쏟아부었다. 수면과 마주한 눈물 십수 방울이 순식간에 굳어 가라앉았다. 학연이 물속에서 제 앞의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제 몸은 머리와 따로 노는지 자꾸만 가라앉았다. 떠 있기 위해 살랑이는 꼬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 한 탓이었다. 레오가 자꾸만 허우적거리는 학연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짐 끌어올리듯 그의 완력으로 증출했다. 학연은 저를 억누르는 듯한 무거운 공기에 더불어 레오를 만난 반가움과 기쁨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눈을 가려 시야가 차단되었다. 아, 조금이라도 더 그를 기억 속에 담고 싶었다. 제 생각을 읽은 것인지 곧장 제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올린 하얀 손이 모래알처럼 고왔다. 그 다정한 손길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제 머리통을 감싸 안은 손길이 안온하다. 그의 품은 따뜻했다. 그의 눈동자는 은색의 머리카락과 대조되게 황혼에 물든 듯 선명하게 짙었다. 다만 초점이 조금 어긋나있었다. 학연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겨우 떼어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오,"

"……."

"만나서… 기뻐요."

"…연아."

"…네. 말-"

 

 

푸욱-.

 

끈적한 피비린내가 피어올랐다. 하얀 손에 번지는 붉은 피가 아름답다. 비릿한 혈향은 바람을 타고 아스라이 흩어졌다. 하지만 자꾸만 그 냄새가 맴도는 것이, 바람이 그 주변만을 하염없이 떠도는 듯싶다. 심장에 꽂힌 단도가 날카롭다. 흉부를 찢은 것은 칼이 아니라, 그의 차가운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학연은 생각했다. 그 짧은 찰나에도 학연은 레오의 모습을 더 담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럴수록 안을 지리멸렬하는 것도 모른 채. 레오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어긋난 채였다.

 

 

"허억, 푸, 흡, 크윽, 레…, 레, 푸-"

 

 

학연은 연신 분수처럼 선혈을 뿜어대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 피에 껄떡껄떡 넘어가는 숨이 위태롭다. 분사된 피는 진주만큼이나 하얀 얼굴에 튀번졌다. 꿀렁거리며 토혈한 학연은 제 심장에 박힌 단도를 손으로 꽉 쥐었다. 여린 손바닥 살을 파고드는 고통은 이전의 고통에 비하면 맹물에 불과한 듯 더해진 고통에도 표정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가파른 호흡에 벌어진 입과 터질 듯이 팽배해져 실핏줄이 튀어나온 눈, 꽂힌 작살에 바르작거리는 꼬리와 뒤틀린 장기에 울렁거리며 치솟는 피를 뱉고 삼키느라 발작하는 목젖. 벌어진 입가를 타고 핏줄기를 만들어 내자 붉은 궤도를 따라 간헐적으로 핏방울이 추락한다.

 

 

"끄윽, 컥, 우욱, 허, 억-"

"…연아."

"우으, 하악, 욱-"

"날 사랑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학연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움직임으로는 그가 알아채지 못 할 테니까. 그리곤 질척거리는 핏덩이를 한 번 더 왈칵 토해냈다. 학연의 입가가 피로 진득하게 덧칠되었다.

 

 

"…그래, 그거면…."

"아으, 커헉, 레, 욱-."

"…이제 나오셔도 돼요."

 

 

아, 그 짙은 인기척은 저 사람들이었나. 연장을 손에 든 대여섯 명의 인파의 대표인지 한 남자가 여럿이 가기엔 좁은 나루터 위로 걸어와 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을 빤히 응시했다. 헐떡이는 학연은 레오의 허벅지 위에 뉘인 채로 그의 옷을 오멸하고 있었다. 진득하고 질척거리는 피가 나루터의 바닥을 적시고 틈새로 흘러 호수에 떨어지는 소리마저 적나라하게 들렸다.

 

 

"레오, 수고했다. 정들었을 텐데 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잖나? 저런 하등한 것 때문에 본 피해를 생각하면 말이야. 약속대로 돈은 주마."

 

 

학연은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파들거리는 목을 겨우 가누어 올려다 본 레오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덮은 은색 머리칼에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절 위해 아무 거짓이라도 뱉어내주길 바랐다. 그리고 종내 침묵한 레오는, 죽어가는 학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심장 박동이 서서히 멎어가는 것을 그대로 감각했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 시선의 끝은 끝까지 집요하게 레오를 물었다. 헐떡이던 가파른 호흡이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차분하고 느려져갔다. 떨림이 멎어가는 손가락까지.

 

이미 다 버린 호수, 그냥 아무 데나 던져놓으라 말한 사람들은 학연의 몸이 더 이상 떨리지 않는 것을 보고 물러갔다. 선선한 바람이 레오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아직은 따뜻한 학연의 두 뺨에 자책과 후회로 오염된 눈물이 후득 튀었다. 자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온 호수에 스며들었다.

 

레오는 축 처진 학연을 안아들었다. 조심스레 호수에 놓자마자 추락하는 것이 꼭 제 모습 같았다. 돈 때문에 이런 추악한 짓을 벌이다니 말이다. 숫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었다. 레오는 호수에 빠질 것처럼, 학연의 잔영이 사라지고 나서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았다.

 

 

-

 

 

투명한 호수의 물결이 누군가의 꼬리질에 말려들어가며 몸짓을 따라 소용돌이쳤다. 푸른 비늘과 커다란 꼬리는 수면 위로 종종 모습을 내비쳤다. 나른한 오후의 찬란한 햇살을 머금은 비늘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하얗게 반짝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나풀거리며 뺨을 건드리자, 인어는 간지러운 듯 몸짓만큼이나 유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뱉었다. 크고 작은 포말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곤 채 수면에 닿기도 전에 바스러져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커다란 것을 잡으려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는 순식간에 터지는 것이 빨랐다.

 

길쭉한 팔은 물의 경계선을 뚫고 나와 차가우면서 선선한 공기와 마주했다. 인어는 호기심을 견디지 않고 꼬리를 살랑여 수면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온통 붉게 무르익은 이파리와 선회하며 추락하는 낙엽. 그리고 바스락대는 소리가 인어의 심신을 치유하는 듯했다. 붉은 숲과 맑게 갠 푸른 하늘이 아름다워 넋을 놓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낙엽 사이로 나풀대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신기한 지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던 인어의 시야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들었다. 고양이는 호수의 위쪽 가장자리에 넓게 박힌 나무판자에 앉더니 고롱거리며 옅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어서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포근하고 유한 미성이 들렸다. 인어는 긴 다리로 휘적거리며 걸어와 고양이를 안아올려 제 허벅지에 살포시 올려두곤 다정하게 쓰다듬는 남자의 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누르익는 태양의 빛을 껴안아 금색인 듯, 머리카락이 깨끗한 호수의 물결만큼이나 부드러운 가을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일렁였다.  고양이를 살살 쓰다듬다가 호수로 시선을 돌린 남자는 저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단박에 눈을 마주친 인어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놀란 몸짓에 깬 고양이는 판자 근처의 잔디로 사뿐히 걸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라 생각했으나,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듯 흔들림 없는 모양새와 소름 끼치는 시선에 남자는 착시가 인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헤엄쳐오며 수면 위에 모습을 보이는 청색의 꼬리에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꼬리의 중앙은 비늘이 뽑힌 것인지 반짝이지 않았다. 남자의 굳은 얼굴에 꼬리질을 멈춘 인어가 한참을 가만있다 입을 열었다.

 

 

"…노래, 부르러 온 거예요?"

 

 

인어는 제가 왜 그런 말을 뱉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저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머릿속에서 꽃을 꺾어 진물이 나는 것처럼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남자는 한참을 대답이 없었다. 인어는 남자의 새카만 눈동자가, 제가 눈을 감았을 때 마주하는 황혼보다도 짙다고 생각했다. 

 

인어는 저를 한참이나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어디선가 꾸물꾸물 피어오르는 안 좋은 기분에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도, 저 목소리는 계속 듣고 싶었다. 

 

지친 듯 살짝 풀려 보이는, 안개가 자욱하게 깃든 새카만 눈동자에 물기가 어린 듯한 모습에, 남자는 안쓰러움이 아닌 죄책감을 느꼈다. 심장이 바위로 짓눌린 듯 갑갑하다 못해 짓뭉개져 터진 것 같았다. 남자의 시야가 어룽거렸다. 기어코 눈물이 고인 것이다. 이유 모를 눈물이었다. 더는 인어를 마주하기 어려울 듯싶었다. 아득한 악몽을 꾼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는 그대로 호수에서 걸음을 돌렸다. 죄책감과 자괴감의 탁류에 휩쓸린 진득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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