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xx leo & n rps fanpage webzine

 

 

 

 

 

“레오 혀엉..!!”

 

 

“으억”

 

 

문을 열자마자 대형견이 달려들었다. 아니, 대형견 말고 이재환이.

 

 

 

 

 

 

 

 

힐링이 필요해

- 우울한 김밥을 위로하는 방법 -

 

 

 

 

 

 

 

 

 

 

간만의 휴식이라 오랜만의 외출을 끝마치고 왔더니 숙소 문을 열자마자 시속 160, 직구로 내리꽂히는 야구공처럼 이재환이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솔직히 포옹이라기보다는, 몸통박치기에 가까운 속도로.

 

 

“재, 재환아?”

 

 

켁, 켁.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고 눌린 숨을 급하게 뱉어내면서 조금은 성난 얼굴로 재환을 보는데, 이쪽을 바라보는 재환이 얼굴이 삼일 만에 처음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애처롭고 간절한 모양새인지라 화를 내고 싶어도 차마 화도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름만 부르며 왜, 왜 그러는데? 물으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재환이 입을 열었다.

 

 

“엔 형이 이상해요.”

 

“학연이가?”

 

 

뭔가 문제가 있긴 하겠구나 싶었지만 재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쨌든 예상범위 안에 있던 내용은 아니었던지라 놀란 물음을 되돌려주니, 재환이 한껏 서러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건지, 여전히 팔 한 쪽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재환의 얼굴은 언젠가 기계 밑에 아끼는 장난감을 밀어 넣어놓고는 차마 꺼내지도 못하고 애꿎은 라비의 얼굴만 간절하게 바라보던 엉덩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엔 형, 오늘 하루 종일 힘이 없어요.”

 

 

혹시 나간 틈에 다치기라도 한 게 아닐까 내심 긴장하며 잔뜩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놓고 있는데, 막상 재환이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보다는 별 것 아닌 내용이었던지라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냥 피곤한 거겠지. 학연이 스케줄 많았잖아, 요즘. 지칠 만도 해. 안 그래도 체력도 약한 애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팔을 흔들어 재환을 떨쳐내려는데, 다시금 아플 정도로 강하게 팔을 잡아 오는 재환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 거랑은 좀 달라요.

 

 

“뭐가 다른데?”

 

 

여전히 심각한 재환의 얼굴에 덩달아 풀어졌던 표정을 굳히며 물으니 재환이 입을 앙 다문다. 짙은 눈썹이 아래로 구겨져 내려가고 높게 뻗은 코 아래 도톰한 입술이 하얀 치아 아래 엉망으로 짓눌려 빛을 잃어 잘생긴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꼭, 울 것처럼.

 

 

“꼭 인형 같아요. 혼 빠져나간.”

 

“인형?”

 

“네. 인형이요. 소파에 누워서 꼼짝도 안 하고, 반응도 없어요. 그래도 평소에는 피곤해도 옆에서 애교 부리면 좀 웃는 척이라도 했는데, 오늘은 옆에서 무슨 짓을 해도 쳐다보지도 않는 거 있죠. 차라리 쉬고 싶으니까 나가라고 하면 나을 텐데.. 말도 안 하고..”

 

 

재환의 머리가 점점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저러다가는 아예 땅으로 무너지겠다 싶어서 손을 뻗어 이마를 받치니 시선을 끌어올린 재환이 웃었다. 그래봤자 힘이라고는 1도 들어가지 않은 풀 죽은 웃음이었지만.

 

 

“내가 들어가 볼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자기는 잘못한 것도 없는 주제에 혼자 자책감에 빠져 시무룩해진 게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더니 재환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바람 다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 웃었다. 네. 미안해요, 형. 힘이라고는 제 말재주만큼이나 없는 목소리로. 

답지 않게 기운 빠진 모습이 보기 싫어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너무 신경 쓰지 마. 차학연 원래 그렇잖아. 남한테 저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하는 거. 하고 말해줄까 하다가 말았다. 그런다고 위로가 되진 않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대신 어깨만 한 번 더 두들기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늦게 뭐가 생각나기라도 한 건지 재환이 다시 소매를 잡아왔다.

 

 

“아, 형. 잠깐만요.”

 

“왜?”

 

“뚱바 가지고 가요. 엔 형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어.”

 

 

그렇게 말 하고 후다닥 걸음을 옮긴 재환이 냉장고에서 꺼내 온 바나나 우유에는 이미 노란 빨대가 수줍게 꽂혀있었다. 뭐야? 뜯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재환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엔 형 한 끼도 안 먹어서 걱정 돼서 들고 갔는데, 형이 안 먹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형이 주면 먹을까 싶어서.”

 

 

티 안 나게 잦아드는 말꼬리에 따라붙는 서운함은 재환이 별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감정은 아닌 것 같아 모르는 척 재환의 손에서 노란 바나나 우유를 넘겨받았다. 통통한 플라스틱 단지 안에 찰랑거리는 노란 액체를 한 가득 품고 있는 바나나 우유는, 타들어가는 이재환 속도 모르고 저 혼자 기분 좋게 시원했다.

 

 

 

 

 

 

 

 

 

 

--

“학연아, 들어간다?”

 

 

소리도 없이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방은 언제나처럼 깔끔했고, 좋은 향기가 났고,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어둡고 또 조용했다. 항상 뭘 한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방주인 차학연은 어딜 갔는지, 어두운 건 질색이라며 지긋지긋할 정도로 밝혀놓던 빛들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건지. 사람 기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방에는, 그나마 희미하게 켜진 작은 무드등이 제 존재감을 애써 드러내고 있었다.

 

 

“학연아.”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방 안으로 퍼져가는 내 목소리에서는 낯선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누구도 들어오길 거절하는 학연의 속내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면서 방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맨 발바닥에 닿는 땅바닥은 답지 않게 서늘했다. 더위도 많이 타는 주제에 추위도 많이 타서 바닥은 절대 항시 땃땃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그렇게 목에 핏발을 세우고 강조하더니, 지금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 마저 없을 정도로 마음이 몰려있구나 싶어 괜히 조급해졌다.

 

 

“차학연? 있지?”

 

 

항상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책상 앞에는 당연히 없고 지친 몸을 눕히던 침대도 텅 비었다. 분명 방 안에 있다고 했는데 이 좁은 방 안 어디에도 학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조금 더 마음이 급해지려는데, 겨우 시야에 걸린 방의 한 끝에서 꼼지락거리는 인영을 찾아냈다.

소파에 누워있는 게 제일 좋다며 언젠가 구입했던 1인용의 작은 소파, 멤버들 사이에서는 차둥지라고 불리는 그 소파 위에 까만 옷을 입은 학연이 상처 입은 작은 동물처럼 몸을 작게 움츠린 채 누워있었다. 까만 소파에 까만 옷을 입고 누워있으면 안 그래도 까만 네가 퍽이나 보였겠다. 무슨 보호색도 아니고. 그래도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았구나,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들자마자 불쑥 올라오는 얄미운 생각들을 애써 꾹꾹 누르면서 조심스럽게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연아.”

 

 

예민하기로는 토끼보다 더 해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잠에서 깨버리는 주제에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학연은 반응도 없다. 작은 목소리였다고는 하지만 이 조용한 방 안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건 일부러 듣지 못한 척 한다는 얘기지.

 

 

“학연아. 자?”

 

 

일부러 대화를 피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금까지의 학연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 끈질기게 건드리고 말을 걸었다. 학연아. 차학연. 그럴수록 학연은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아르마딜로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며 대화를 거부했지만, 모든 것에 날을 세우던 첫 만남의 나에게 네가 눈치 없는 척 성큼성큼 다가왔었던 것처럼 나도 이렇게 겨우 말 몇 마디 안 받아줬다고 쉽게 물러 날 생각은 없었다.

 

 

“차학연.”

 

 

몸이 조금 더 동그랗게 말렸다.

 

 

“학연아.”

 

 

두 팔 사이로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이 꽁꽁 숨어 버린다. 머리카락 한 올도 보여주기 싫은 건지, 유난히도 꼼꼼하게 숨긴 얼굴은 저러다 소파 속으로 아예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다.

 

 

“.... 연아.”

 

 

이름을 부르다, 부르다 안돼서 결국 학연이 좋아하는 애칭까지 꺼내놓자 꼼질꼼질 이제 아예 소파 등받이 쪽으로 몸을 돌려 나에게 등을 보이려던 학연의 움직임이 드디어 멈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금 더 상냥한 목소리로, 그러니까 차학연이 좋아 죽는 정택운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연아. 나 안 볼 거야?”

 

 

팔에 꽁꽁 숨긴 채 앞으로도 계속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던 고집스러운 얼굴이 어린애를 달래는 것 같은 간지러운 목소리에 그제야 이쪽을 향한다. 불만에 가득 찬 동그란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평소 깔끔하던 머리마저 부스스한데다 항상 별처럼 반짝이던 눈동자까지 별 하나 없는 흐린 밤하늘처럼 까맣게 가라앉았다. 이러니 재환이가 기겁하고 놀랐지. 나도 좀 놀라는 마음 반, 안쓰러운 마음 반, 해서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마른 뺨을 감싸니 싫다는 것처럼 학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물론 힘이라고는 전혀 담기지 않은 그 행동에 손이 떨어져 나갈 리가 없었고.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껌딱지 마냥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내 손에, 기어코 지친 학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 마.. 가...”

 

 

얼마나 입을 오랫동안 안 열었던 건지 형편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해서는.

그 차학연이 말을 안 해서 가라앉은 목소리라니. 어쩐지 조금 더 묘 한 기분이라 몸을 더 기울여 학연에게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아쉽게도 학연인 같은 극에 밀리는 자석처럼 뒤로 도망쳐 버렸지만.

 

 

“가라구우....”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칭얼거린 학연이 마찬가지로 매가리 없는 손길로 낑낑거리는가 싶더니, 기어코 내 손을 떼어 내고는 다시 제 얼굴을 두 팔 사이로 숨겨 버렸다. 적을 피해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는 토끼처럼 온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린 학연은 이번에는 연아, 연아.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나갈 때까지, 저도 나름의 시위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연아, 나 가?”

 

“...”

 

“진짜 가?”

 

 

당연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나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조금은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내 손에 눌린 소파가 크게 출렁였고 그 위에 동그랗게 말린 학연의 몸도 덩달아 출렁이며 흔들렸다. 그 움직임에 놀란 학연이 아주 작게 몸을 떨었지만 끝까지 고집 부리기를 끝낼 생각은 없었는지 동그란 정수리는 그럼에도 여전히 고집스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정수리를 한참을 말없이 가만 바라보기만 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가라면, 가야지.

물론 문 말고, 차학연 침대 쪽으로 갈 거지만.

 

 

 

 

 

이불을 들어올렸다.

유난히 부드럽고 보송보송해서 학연이 특히나 좋아하는 이불을.

킁킁, 차학연 냄새랑 향초 냄새랑 섬유 유연제 냄새 같은 것들이 몽글몽글하게 배여 있는 이불을 들고 다시 성큼성큼 학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학연인 여전히 소파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파묻혀 있었는데 어떤 자극도 거부하겠다는 것처럼 꽁꽁 말린 몸은, 동그랗게 말려선지 평소보다 더 작고 또 작아서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버렸다. 

저 마른 몸에, 얇은 어깨에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고, 이고 있었던 건지. 

내려놓는 방법도 모르는 멍청한 차학연.

 

 

“학연아.”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니 동그랗게 말린 몸이 듣기 싫다는 것처럼 더 동그랗게 말렸다. 아주 제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겠다. 유연성 자랑을 저렇게도 하나?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몸을 숙이고, 손을 뻗어, 조금은 우악스럽게 학연과 소파 사이 애매한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소파와 허리 사이로 파고 들어온 이물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던 학연이 불편한 몸을 꿈틀거리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본다. 뭐 하는 거야? 해명을 요구하는 눈동자에는 드디어 조금의 빛이 돌아와 있었다. 이제야 나 보네? 놀란 얼굴에 웃어주면서 나는 힘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학연의 몸을 그대로 달랑, 위로 들어올렸다.

 

 

“끄아?”

 

 

갑자기 공중에 들어 올려진 몸에 정말로 제대로 놀란 학연이 내가 방에 들어오고 나서 제일 큰 목소리로 얼빠진 비명을 지르며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내 목을 다급하게 붙잡아 왔다. 훨씬 가까워진 몸에는 놀란 심장이 빠르게 콩닥거리는 감각이 전해졌다. 토끼 같다. 엄청 놀란 토끼. 아니면 작은 새라던가. 품 안에서 하닥 거리는 마르고 따뜻한 몸에 몰래 웃으면서 나는 우악스럽게 들어 올렸던 처음과는 정반대로 조심스럽게 학연을 아까 펼쳐놓은 이불 위로 올려놓았다.

얼결에 이불 위에 올라앉게 된 학연이 여전히 놀란 심장을 진정이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손으로 가슴께를 꾸욱 누른 채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네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착하다.”

 

 

해명을 바라는 얼굴에 딱히 답해 줄 말은 없어 그냥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고는 손을 뻗어 어깨를 밀었다. 하루 종일 굶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은 작은 힘에도 쉽게 뒤로 풀썩 넘어져 버렸고 뒤로 발라당 자빠진 학연이 다시 일어나려고 용을 쓰기 전에 나는 잽싸게 이불 끝자락부터 잡아 그대로 학연의 몸을 이불로 꽁꽁 말아버렸다. 꼭 포대기에 쌓인 애기, 아니면 김밥 발로 예쁘게 잘 말린 김밥처럼.

물론 이불로 마는 중간 중간 당황한 학연이 버둥거리며 나를 밀어내려는 힘이 느껴졌지만 힘으로 차학연한테 밀릴 내가 아니지. 결국 힘의 차이에 굴복해 버린 학연은 반항을 포기했다. 뭐, 이 쪽을 바라보는 사나운 눈빛까지 포기한 건 아닌지 얼굴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 하.....”

 

 

이불로 꼼꼼하게 학연의 온 몸을 꽁꽁 감싸고 만족한 얼굴로 내려다보자 온 몸이 이불에 쌓여 얼굴만 빼꼼 나온 학연이 뭐라 불만에 찬 불평을 늘어놓으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애꿎은 한숨만 푹 내쉬며 다시 꾹 닫아버리는 게 보였다. 분명 뭐라 불평을 늘어놓으려다 귀찮아진 거겠지. 혹은 에라 모르겠다. 얌전히 있으면 지도 지쳐 나가겠지. 라고 생각하거나. 

평소의 나라면 학연의 생각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겠지만 오늘의 나는 다르다. 차학연이 평소의 차학연이 아닌 것처럼.

 

 

“착하다, 착해.”

 

 

머리를 쓰다듬으니 학연이 입술을 물었다가 이제는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아, 짜증나. 오늘따라 왜 이래. 짜증 섞인 불만은 입을 통하지 않았음에도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으로 학연의 표정을 타고 쏟아져 나왔지만, 오늘의 나는 눈치 없는 컨셉이니까, 모르는 척 보지 못한 척 이불에 쌓여 바닥에 누워있는 학연의 몸을 반쯤 일으켜 품에 안았다. 답답하게 감싸인 몸이 불편한지 학연이 벗어나려 다시 버둥거리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팔과 다리로 몸을 완전히 감싸고 더 꾸욱 힘을 주자 또 금방 포기해 버리고는 몸에 힘을 뺀다.

 

 

“학연아.”

 

 

한결 얌전해진 몸을 끌어안고 가만히 속삭이자 귀에 맞닿은 입술에 숨소리가 간지러웠는지 학연이 어깨를 움츠린다. 이 쪽을 잠깐 향했다 팩 돌아가는 얼굴에는 불만이 한 가득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모르는 척 샐샐 웃어주기만 했다. 연아, 네가 눈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목소리를 내기 전에는 난 아무것도 몰라. 오늘 나는 눈치 없이 굴기로 했으니까.

 

 

“연아, 영화 볼까?”

 

 

이제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표정을 읽지 못한 척 나는 눈치 없이 다시 물었다.

학연은 고개를 조금 더 돌려 이 쪽을 완전히 외면한 채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조용하게 이어지는 침묵을 버티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이니까.

가만히. 대답을 재촉하지도 않고 다시 묻지도 않고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면 결국 백기를 드는 건 차학연이니까.

 

 

“...”

 

 

끝까지 이 쪽을 향하지 않을 것 같던 고개가 결국 다시 이 쪽으로 돌아온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는 나한테 약하지. 마주 한 얼굴에는 체념이 가득했지만 드디어 작게 흔들림으로 제 의사를 내게 전한다. 싫어, 보고 싶은 기분 아니야. 가만히 내저어지는 고개가 예뻐 나는 또 손을 뻗어 학연의 풀 죽은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닿아오는 손길은 또 싫지 않았는지 학연은 얌전하다.

 

 

“영화 싫어? 너 좋아하는 거 볼 건데? 로맨스 영화. 조용하고 잔잔한 걸로.”

 

 

학연의 고개가 다시 흔들렸고, 나는 머릿속으로 애써 떠올려 쭈욱 늘어놓았던 로맨스 영화 목록을 슥슥 지워냈다. 그럼 뭘 할까. 뭘 해야 네가 기운이 날까.

방황하는 시야에 아까 재환이 쥐어준 바나나 우유가 들어온다. 학연을 이불에 꽁꽁 마느라 옆에 잠깐 치워뒀던, 미적지근한 공기를 만나 표면에 물기가 살짝 서린 차학연이 그렇게 좋아하는 이재환이 챙겨 준 바나나 우유.

 

 

“그럼 연아. 뚱바 먹을래? 재환이가 너 먹으라고 챙겨줬는데.”

 

 

그러면서 바나나 우유를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시늉을 하자 품 안에서 학연이 푸드득 거린다. 격한 반응에 고개를 숙여 학연일 내려 보니 상당히 다급한 얼굴로 차학연이 고개를 저어 온다. 

급한 그 움직임은 떨어지는 내 온기가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어서 일까. 대답은 알 수 없지만 나는 멋대로 전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몸을 앉혀 동그랗게 말린 학연을 조금 더 품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이불 속에 묻혀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대충 어깨로 짐작되는 곳에 턱을 올려놓고 다시 물었다.

 

 

“그럼, 뭐 해줄까. 뭐가 하고 싶어?”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 경우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지 학연은 또 대답이 없다. 어차피 나도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질문은 아니었기에 가만히 머릿속으로 학연이 뭘 해줘야 기분이 풀릴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해줘야, 우리 연이 기분이 나아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쏟아진 혼잣말을 끝으로 방 안에는 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아까만큼 초조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편한 느낌이라면 모를까. 

품 안에 가득 찬 몸을 끌어안으며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불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에 기분이 좋은 게, 어째 차학연이 아니라 내가 힐링 되는 기분이라 절로 콧노래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허밍인지 노래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작은 흥얼거림에 품 안에 긴장한 몸이 조금씩 풀리는 것도 같았다.

 

 

“연아, 시끄러워?”

 

 

기어코 한 곡을 모조리 부르고 나서야, 나는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 내 품안에서 한껏 풀어진 네 몸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일부러.

그리고 끝내 멈춘 노래에 이 쪽을 돌아보던 학연은 내 질문에 당연하게도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

 

 

하는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럼, 이제 뭐 해줄까.”

 

 

하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다.

나는 정말로 다른 것을 해주고 싶은 것처럼 또 조용히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뭘 해줄까. 뭘 해줘야 네가 좋아할까.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방금 찾은 주제에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는 척.

 

 

“노래...”

 

“응?”

 

“노래해줘, 계속.”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끌었더니 기어코 참지 못 한 네 입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원하는 바가 쏟아져 나온다. 

마주 한 눈동자에는 이제야 내 모습이 비친다.

 

 

“노래해줘?”

 

“응. 뭐든 좋으니까.”

 

 

노래 해 줘.

조심스럽게 말 하는 입술에 꾹 도장을 찍어내고 나는 학연이 원하는 대로 다시 입을 연다.

해줘야지, 네가 해달라는데 당연히 해줘야지.

 

 

“그때 난 너무 어리기만 했고

꿈은 항상 멀게만 보였어.

 

가파르던 시간을 지나

오르막 같던 험한 길을

같이 걸으며 언제나 내게 힘이 돼준 건

 

바로 너야 내게는 니가

그런 사람이야.

너 아니면 지금 이 시간은

아마 없을 거야.”

 

 

조용한 방 안으로 작은 내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려 퍼진다.

품 안에 안긴 네 몸은 힘을 푸는지 자꾸자꾸 미끄러져 내려가서 나는 더 힘주어 너를 끌어안았다.

 

 

“너무나 커져버린 고마운 내 마음을 다

말로는 표현 못해.

그저 난 니 손을 잡고

걸을게.”

 

 

조금씩, 품 안에 안긴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모르는 척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그 소리에 어느새 조금씩 네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흑, 끅.. 흐으..”

 

 

처음에는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흑, 흐어엉.”

 

 

그리고는 끝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쏟아지기 시작한 울음소리에 품 안에 마른 몸은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착하지, 우리 연이. 나는 떨리는 몸을 조심스럽게 토닥이며 계속 노래를 이었다.

 

 

“혼자였다면 올 수 없던 길,

빛이 돼 준건 너였어.

니가 있어 다행이야.

내 곁에.”

 

 

힘들어도 괜찮고 울어도 괜찮아, 연아. 내가 곁에 있을 거니까. 네가 힘들면 내가 언제든 널 이렇게 안아주고 토닥여 줄 테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노랫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작게 흐느끼는 네 울음소리와 조용한 내 노랫소리가 만들어내는, 참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화음이 조용한 방 안을 온통 가득 채웠다.

한참 동안이나.

 

 

 

 

 

 

 

 

 

 

--

“다 울었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드디어 말문이 트인 학연은 퉁퉁 부어버린 빨간 눈을 가리고 심통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껏 위로해주고 달래줬는데 저 얼굴은 뭐야.

빠방하게 복어마냥 부풀어 오른 뺨을 찌르며 묻자 얼마나 울었는지 다 꽉 막혀버린 목소리로 학연이 입을 연다.

 

 

“아, 너. 우리 노래는 진짜 반칙이지.”

 

 

불평 섞인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거나 다 좋다며.”

 

“아, 몰라.”

 

“너 눈 다 부었다.”

 

“굳이 말 안 해줘도 알거든?”

 

 

매섭게 뻗어 나와 아프게 찰싹 목을 때리고 가는 손은 차학연의 드디어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픈 와중에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학연도, 해맑게 웃는 내 얼굴에는 결국 저도 같이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제 기분은 좀 괜찮아?”

 

 

덥다며 온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에서 꿈틀꿈틀 벗어나려 노력하는 학연의 몸에서 이불을 벗겨주며 가만히 묻자 한결 시원해진 얼굴로 학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오늘 들어 처음 보는 웃는 얼굴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드디어 웃네.”

 

“미안, 걱정했지.”

 

“걱정은 나보다 이재환이 더 했으니까 뚱바 좀 먹어. 너 밥 한 끼도 안 먹었다고 엄청 걱정하더라.”

 

 

이거 이대로 들고 나가면 이재환 울 걸?

협박하는 것처럼 냉기가 다 빠져나가 미지근해진 바나나 우유를 흔들자 학연이 웃으며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간다. 미지근해진 바나나 우유가 뭐가 그리 맛있을까 싶지만은 이재환 걱정한 마음 값인지 바나나 우유를 비워내는 차학연 얼굴은 자꾸만 밝아진다.

 

 

“동생들 마음고생이나 시키고, 나 못난 형이다. 그치?”

 

 

텅 빈 바나나 우유 통을 다시 넘겨주며 학연이 멋쩍은 듯이 웃는다.

나는 가만히 팔을 뻗어 학연의 몸을 끌어안았다. 순순히 딸려온 몸이 이번에는 내 허리를 마주 안아 준다.

 

 

“넌 더 어리광 부리고 그래도 돼.”

 

“에이, 너희 걱정하잖아.”

 

“너는 매일 우리 걱정하잖아. 그러니까 가끔은 우리가 걱정해도 돼.”

 

 

그리고는 대답이 없는 몸을 더 단단하게 끌어안자 한참을 조용하게 있던 네가 어쩐지 꽉 막힌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연다.

 

 

“너 진짜 불시에 그런 말 좀 하지 마.”

 

“무슨 말?”

 

“나 울리는 말.”

 

 

뭔가를 또 참는 목소리로 학연이 투덜거리길래 살짝 몸을 떼어내 그새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가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얌전하게 입술을 받아낸 학연이 킁, 코를 한번 쿨쩍인다.

 

 

“나갈래?”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꾹꾹 눌러주며 물으니 잠깐 고민하는 얼굴을 한 학연이 고개를 젓고는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어온다.

 

 

“너한테 조금만 더 어리광 부리고.”

 

“그래.”

 

 

팔을 한껏 벌려 고양이처럼 부비작거리는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고마워, 속삭이는 입술에 꾹 입을 맞추자 마주친 눈이 푸스스 동그랗게 휘어진다. 그 동그란 눈 꼬리가 너무 예뻐 나는 다시 입을 맞추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움직임을 멈췄다. 코앞에서 멈춘 얼굴에 의아한 얼굴을 하는 학연이에게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야, 너 근데.”

 

“응.”

 

“어리광은 내 앞에서만 부리기. 알지?”

 

 

또 무슨 심각한 얘기를 하려나 덩달아 진지한 얼굴을 했던 학연이 내 뜬금없는 말에 동그랗게 놀란 눈을 했다가 금방 또 빵, 웃음을 터트린다. 햇살처럼 피어나는 웃음에 자칫 풀어질 뻔 한 표정을 가다듬고 내가 여전히 엄한 표정으로 얼른 대답할 것을 강요하자 꽃에 내려앉는 나비처럼 학연이 조심스럽게 제 입술을 내 입술 위로 포개왔다.

 

 

“당연한 걸.”

 

 

약한 나도, 어리광쟁이인 나도, 다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 뻔히 알면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 나는 도망가려는 학연의 동그란 뒤통수를 잡아 채 다시 한 번 더 그 예쁜 입술에 깊숙이 입을 맞췄다.

 

 

 

 

 

드디어 더는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리로 감겨오는 팔은, 이제야 언제나처럼 따뜻했다.

 

 

 

 

 

누가 그를 하찮은 형이라 했는가. by. 익명
Salvatio by. D. 에르타
꽃잎놀이 by. 허브
사랑의 죽음 by. 춘몽
소년과 소년의 청춘 by. 청
Our Happy Ending by. 창문
힐링이 필요해 by. 징어
Nostalgia (노스텔지아) by. 이든
인어소년 by. 몽환의 오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by. 멜렛
One Step Closer to Blossom by. 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