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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과 소년의 첫 만남, 청춘의 시작

 

 

 

 "안녕. 내 이름은 차학연이고 일본에서 유학하다 왔어. 나이는 너희보다 한 살 많은 19살이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줘."

 

 

 

 학연은 처음부터 당돌했다. 당당하게 자기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원래 있었던 학생처럼 수업을 들었다. 보통의 전학생은 긴장하기 마련인데 학연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신선함에 택운은 고개를 들었다. 전혀 떨지 않는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하는 목소리가 특이해서. 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궁금해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택운은 한참이나 학연을 관찰했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연을 쫓았다. 칠판 앞에 있던 학연이 자리에 앉고 가방을 내려놓고 교과서를 펴는 것 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학연과 눈이 마주쳤다. 택운은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 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해서 그 눈을 피할텐데 택운도 학연과 마찬가지로 '보통'이 아니었다. 흔들리지도, 피하지도 않는 택운의 눈을 쳐다보다 학연은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안녕?"

 

 

 

 택운이 대답없이 고개를 돌려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학연 또한 인사가 무시 당한 것은 상관 없는지 더 관심을 갖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아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 만남이 소년들의 첫만남이자 청춘의 시작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쉬는시간에 전학생에게 몰려 들지 않았다. 학연이 한 살 더 많아서 그런 건지 다들 곁눈질 하며 눈치를 봤다. 누구하나 학연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 않았다. 어찌보면 어색한 이 상황에서 학연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교실 안은 정적까지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깨고 학연에게 말을 건 사람은 반장 H었다.

 

 

 

 "형, 나머지 교과서예요. 이건 야자랑 석식 신청서인데 담임선생님이 내일까지 가져오래요."

 

 "아, 고마워."

 

 

 

 학연이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H가 학연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릴 때 엎어진 채로 고개만 학연쪽으로 돌렸던 택운도 학연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별 생각 다 한다, 정택운.'

 

 

 

 다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택운이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학연의 미소와 신비로운 목소리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소년 정택운

 

 

 

 택운은 누가 봐도 미남이었지만 의외로 연애경험은 한번 뿐이다. 중학생 시절 택운은 이미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이 사회에서 택운은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다. 택운에게 고백하는 여자들은 많았다.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는 아이도, 옆 학교에서 여신이라고 불린다는 아이도 모두 거절 당했다. 그럴 때마다 택운의 친구들은 너 혹시 게이냐며 농담조로 묻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택운은 곧 한 여자아이와 사귀었다. 혹시나 게이가 아닐 수도 있는 건가 싶었던 마음에서 그랬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못 했다. 아무리 봐도 예쁘지 않았고 아무리 만나도 좋아지지가 않았다. 열여섯 평생 여자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생길리가 없었다. 아무 감정 없던 연애가 택운의 첫 연애였다.

 

 

 

 

 

 

 

*

 

 "정택운! 오늘 끝나자마자 훈련 있는 거 잊지마."

 

 "알았다니까."

 

 

 

 택운과 같은 축구부 R이 외쳤다. 학연은 대답하는 소리를 듣고 택운을 쳐다봤다. 그 때 처음 택운의 이름을 알았을 것이다. 

 

 

 

 

 

 

 

 기합을 넣으며 운동장을 뛰는 소리가 규칙적이면서도 요란했다. 축구부가 트랙을 다 닳게 만든다는 농담이 종종 감독과 코치에게 들릴 정도로 정말 축구부 선수들은 열심히도 달렸다. 그 중 택운은 더 크게 기합을 넣고 더 열심히 달렸다. 머릿속에서 학연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만 둥둥 떠다녀서 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기침이 나왔다. 다른 선수들은 지쳐 트랙 위를 벗어나 바닥에 주저 앉았다.

 

 

 

 "정택운 쟤 오늘따라 폭주하네."

 

 "미친놈. 지치지도 않아."

 

 

 

 발바닥이 불타오르는 것 같고 허벅지와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느껴질 때쯤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바닥에 뒹굴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도 않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야, 괜찮냐? 너 오늘 좀 오바한다 했다."

 

 

 

 R이 다가와 뚜껑을 연 생수를 건넸다. 택운은 마시지도 않고 바로 머리 위로 뿌려댔다.

 

 

 

 "감독님이 너 오늘 상태 이상하다고 훈련 할 수는 있겠냐는데."

 

 "해야지."

 

 "너 뭔 일 있냐?"

 

 "아니."

 

 

 

 소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택운은 억지로 힘을 줘 일어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축구하면서 이렇게 뛰어본 적이 없는데 그럼에도 머릿속에 자리잡은 차학연은 더욱 뚜렷해졌다.

 

 

 

 

 

 소년 차학연

 

 

 

 학연은 전국 대회를 휩쓴 무용 천재다. 말 그대로 천재. 일본에서 춤을 배우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진학을 포기하고 다녀올 정도로 춤을 사랑한다. 학연의 춤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그의 춤은 매력적이고 사람을 홀리게 만든다. 학연 자신도 제 춤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점을 똑똑하게 이용한다. 그러나 학연은 부드러운 외모와 춤선과는 다르게 성격은 그렇지 못 했다. 물론 겉으로는 누구보다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학연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학연의 평판은 매우 좋다 못 해 찬양까지 받는 수준이었다.

 

 

 

 "학연아. 이번 대회는 1학년에 C 위해서 네가 포기해주면 안 되겠니?"

 

 "제가요? 왜요?"

 

 "너도 알다시피 C가 실력은 있는데 빛을 못 봤잖니. 이번에 네가 포기하면 C가 상 받는 건 시간문제,"

 

 "싫어요. 저는 그 대회 나갈거예요. C가 상을 받는 건 C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지, 제가 안 나간다고 C가 상을 받는단 보장이 있나요?"

 

 

 

 할 말은 해야만 하는 성격. 손해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사실 이렇게만 보면 그리 나쁜 성격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는 것 뿐이다.

 

 

 

 

 

 소년과 소년의 감정-1

 

 

 

 학연이 전학 온지 며칠이 지났다. 그새 반 아이들과 꽤 친해졌는지 같이 점심을 먹고 매점을 가기도 했다. 택운은 답지 않게 손톱을 물어 뜯다 다리를 떨었다. 아직 저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해봤는데 다른 아이들과 친해져 있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학연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맛 우유를 좋아하고 어떤 맛 사탕을 좋아하는지, 카페에 가면 주로 시키는 음료가 무엇이고 춤은 몇 살 때부터 했고 일본에서는 어디에 살았는지 까지 알게 됐다. 담임이 학연을 제 자리와 가까운 곳에 배치한 것을 택운은 감사히 여겼다.

 

 

 

 택운은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매점에 들려 바나나맛 우유와 막대사탕 하나를 샀다. 아직 텅텅 비어있는 교실에 조심히 들어가 학연의 책상 위에 두고 나갔다. 화장실에 가 괜히 한 번 손 씻고 머리도 다시 만지며 시간을 할애하다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학연과 아이들 몇 명이 학연의 책상 주변에 서서 떠들고 있었다.

 

 

 

 "와, 형! 이거 누가 준 거예요?"

 

 "어... 글쎄?"

 

 "여자애가 놓고 간 거 아니예요?"

 

 "아하하... 설마..."

 

 "에이, 그럼 남자애가 뒀겠어요?"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형 농담도."

 

 

 

 또 이렇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기에 택운이 있는데. 유일하게 부정하지 않은 사람이 학연이었다. 택운은 속이 쓰렸다. 만약 학연과 좋은 감정으로 만나게 되어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엔 이미 소년의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택운은 정말 꾸준히도 학연을 관찰했다. 전학 왔던 첫 날부터 지금까지 시선의 끝은 언제나 학연이었다. 얼마 전에는 무용 연습을 하는 학연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림을 그리듯 부드러운 선으로 움직이는 학연 자체가 예술이었다. 택운은 또 다시 반했다. 야외에서 또래 남자들과 때로는 격한 몸싸움까지 하며 뛰어다니는 축구를 하는 자신과는 다름에 반해버린 것이다. 

 

 

 

 학연이 연습하는 장소를 알게 된 이후부터 택운은 우연을 가장해서 그 앞을 지나가고는 했다. 물론 그냥 지나치는 것은 아니고 항상 창문 너머로 연습하는 학연을 봤다. 어느 날은 나풀거리는 의상을 입고 춤을 췄고, 어느 날은 까만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춤을 췄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의상을 입고도, 눈을 가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춤을 추는 것이 신기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택운은 눈을 가리고 축구를 하라면 절대 못 할거라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소년과 소년의 감정-2

 

 

 

 학연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전학 첫 날부터 꾸준히 자신을 관찰하는 눈빛을, 수시로 책상 위에 놓여진 바나나우유의 주인을, 교내 연습실 창문 너머에 비친 그림자를.

 

 모두 알면서 모른 체 했다. 티 내려 하지 않지만 전부 티가 나는게 귀엽기도 하고 택운이 제 취향의 얼굴이기도 하고... 이 상황이 재미있으니까 모른 체 했다. 학연은 게이가 아닌 스트레이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운은 학연 취향의 얼굴이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 까맣고 부드러운 머릿결,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붉은 입술. 어떻게 보면 소설 속 여주인공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택운의 외모이다. 그리고 동시에 학연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학연은 여자를 좋아했고 여자들 또한 학연을 좋아했다. 학연의 춤 실력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고 그의 무대를 보았다면 그게 누구든지 학연에게 빠져들었다. 덕분에 학연은 마음껏 여자를 사귀었다. 그런 학연이 택운에게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라기 보다는 호기심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만. 

 

 

 

 "근데 저기 창가자리 쟤. 쟤는 어떤 애야?"

 

 "누구요? 아. 택운이요?"

 

 "응, 쟤 이름이 택운이야?"

 

 "네. 정택운이요. 축구하는 애예요.  서울 지역에서 제일 잘 한다던데."

 

 

 

 학연은 이름을 알면서도 물었다. 그리고 꼭 생긴 것처럼 논다고 생각했다. 그래, 저 몸에 축구 안 하면 억울하겠다. 

 

 

 

 

 

 택운이 축구 한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학연은 몰래 몰래 택운을 쳐다보고는 했다. 정확히는 택운의 몸. 벌어진 어깨, 단단한 팔뚝, 누가봐도 운동한다고 써있는 허벅지까지. 그렇게 택운의 몸을 훑고 나면 집에 가서 게이 포르노를 보며 수음을 했다. 학연은 제 취향이 변한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모두 쟤 때문에. 날 자꾸 쳐다보는 정택운 때문에.

 

 

 

 

 

 소년의 고백

 

 

 

 

  그 날은 유난히 분위기가 차분했다. 언제나 시끄러웠던 2학년 2반이 조용해,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들 마저 놀랐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날씨가 우중충해서인지 가라앉은 분위기 덕에 수업이 끊기지않고 진행된다며 선생님들은 좋아했다. 

 

 

 

 

 

 "야자 도망가지 말고. 야자 안 하면 다른 데로 새지 말고 집 가라들. 이상, 종례 끝."

 

 

 

 담임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학연은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 들어가자마자 하얀 티셔츠만 놔두고 교복 상의를 모두 벗고 노래를 틀었다. 이상한 노래가 나왔다. 어딘가 섬뜩하기도 했고 해괴했다. 그런 노래에도 학연은 춤을 췄다. 분명 춤선은 부드러운데 각이 잡혀 있고 강약이 정확했다.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향하면서 학연의 춤도 격해졌다. 밝지않은 연습실인데도 학연의 땀이 보이는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춤도 끝났고 학연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크게 내뱉는 숨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학연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 푸흐흐 웃었다.

 

 

 

 "그만 쳐다봐."

 

 "......"

 

 "할 말 있음 들어오던가."

 

 

 

 어김없이 창문너머로 학연의 춤을 보던 택운에게로 던져진 말이었다. 택운은 눈을 꾹 감았다. 쪽팔려. 학연이 알아버린 이상 자리를 피하는 것도 이상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머리를 한번 헝크린 택운이 다시 헝크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들어갔다.

 

 

 

 "몰래 보려던 건 아닌데."

 

 "......"

 

 "지나가는데 노래가 좋아서... 그래서,"

 

 "Ramalama."

 

 "어?"

 

 "노래 제목이야. 원래 백댄서가 있어줘야 더 멋있는데 아직 안무 수정하는 단계라 나 혼자 연습해."

 

 "아..."

 

 "그래서. 할 말이 뭐야?"

 

 "...응?"

 

 "생긴거랑 다른게 답답하네. 할 말 있어서 들어온 거 아냐?"

 

 

 

 아, 바보. 택운은 제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들어왔는데 할 말이 있을리가 없었다. 택운이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자 학연이 몸을 일으켰다.

 

 

 

 "할 말 없으면 난 갈게."

 

 "......좋아해."

 

 

 

 충동적이었다. 학연을 잡고 싶은 마음에 다급해져 얼떨결에 고백을 해버렸다. 그새 해가 져버려 연습실이 더 어두워졌다. 학연의 표정이 보이지가 않았다.

 

 

 

 "뭐?"

 

 "좋, 좋아한다고."

 

 "너 그럼 나랑 사귀고 싶어?"

 

 

 

 학연은 참 당연한 것만 묻는다.

 

 

 

 

 

 소년의 첫사랑, 그리고 첫...

 

 

 

 택운과 학연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같은 반이면서 대화 한 번 한 적 없는 둘이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택운의 짝사랑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한다. 수업 종이 치고 학연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얼굴은 싱글벙글이었고 택운은 책상 위로 엎드리지 않았다.

 

 

 

 "형, 좋은 일 있어요?"

 

 "응? 아니, 뭐... 조금?"

 

 "택운이랑 친해보여요."

 

 "그래? 살짝 친해졌어."

 

 "어떻게요?"

 

 "쉿. 앞에 봐. 수업 시작한다."

 

 

 

 학연이 전학 온 날부터 학연 옆에 붙어있던 K가 물었다. K는 찜찜한 표정으로 택운을 쳐다봤다. 찜찜한 표정을 넘어 화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평화롭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아무도 택운과 학연의 연애 사실을 알지 못 했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둘은 의외로 맞는 구석이 있어 금방 친해진 사이. 그 이상 혹은 그 이하 무엇도 아니었다. 단 한 사람 K만이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택운아, 근데 너 왜 나한테 반말해?"

 

 "반말?"

 

 "그렇잖아. 다른 애들 다 내가 한 살 많다고 형형 거리고 존댓말 쓰는데. 너는 차학연이라고 부르고 반말 하고..."

 

 "그럼 안 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딱히 이유 없어. 같은 학년이고 같은 반인데 존댓말은 좀."

 

 "진짜 너 특이해."

 

 "그런 말 많이 들어."

 

 "근데 우리 교실 안 들어 가도 돼? 곧 수업 시작할텐데..."

 

 "괜찮아."

 

 

 

 양호실 침대에 누운 학연이 택운에게 귀를 대보라며 손짓을 했다.

 

 

 

 "택운아, 내 옆에 누워."

 

 "뭐?"

 

 "좀 안아줘."

 

 

 

 아프다고 해서 양호실 데려왔더니 말도 잘 하고 이제는 누워서 안아달라고 까지 한다. 아픈게 맞나 의심될 정도로 멀쩡해보였지만 택운은 순순히 학연의 말을 들었다.

 

 

 

 "네가 애기야?"

 

 "응, 네. 하겨니 애기에요. 네쨜."

 

 

 

 하, 너 정말... 택운이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그 모습에 학연이 조그맣게 킥킥거렸다. 웃지마, 양호쌤이 나가라하면 어떡해.

 

 

 

 "택운아-"

 

 "네, 네! 선생님!"

 

 "나 잠깐 나갔다 와야 하니까 아프다는 학생 있으면 선생님한테 연락해."

 

 "아, 네. 그럴게요."

 

 

 

 양호실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크게 소리쳐 대답한 택운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 커튼 너머 침대에 남학생 둘이 꼭 껴안고 있는 것을.

 

 

 

 "택운아 있지... 너 키스 해봤어?"

 

 "뭐?"

 

 "아 해봤냐구!"

 

 "너는?"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그런 거 안 해봤어."

 

 "헐. 생긴 건 이미 여럿 임신 시켰는데."

 

 "말 조심해, 차학연."

 

 

 

 미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학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택운이 고개를 숙여 학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학연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떠졌다.

 

 

 

 "이게 내 첫뽀뽀야."

 

 

 

 얼굴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으면서 빨개진 얼굴로 말하는 택운이 제법 귀엽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학연이 놀란 표정을 풀고 작게 웃더니 택운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학연의 혀가 택운의 입 속으로 밀고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굳어버린 택운은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눈을 꾹 감았다. 한참을 택운의 입술을 물고 핥던 학연이 입술을 떼고 말했다.

 

 

 

 "이건 네 첫키스."

 

 

 

 

 

 아, 웃겨. 커튼이 쳐진 옆자리 침대에 누워서 게임하던 K가 비웃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택운과 학연은 사랑을 속삭였다.

 

 

 

 

 

 소년과 소년의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 비극

 

 

 

 "정택운! 감독님이 너 지금 당장 오라고 난리야!"

 

 

 

 R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학연과 마주보고 앉아 웃던 택운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 교실을 나섰다.

 

 

 

 "왜."

 

 "나도 몰라. 너 빨리 데려 오래."

 

 

 

 

 

*

 

 "감독님, 저 왜 부르셨,"

 

 "미친 새끼야!"

 

 "윽!"

 

 

 

 감독이 택운을 보자마자 무릎을 발로 찼다. 택운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저절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바로 멍이 든 느낌이 들었다.

 

 

 

 "너. 하나만 정해. 축구를 그만 둘 건지, 게이짓을 그만 둘 건지."

 

 

 

 무릎을 쥐고 있던 택운이 고개를 들었다. 택운과 학연이 사귀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는데 감독이 대체 어떻게 안 건지 두 눈에 살기를 띄고 택운을 노려봤다.

 

 

 

 "그게 무슨..."

 

 "모르는 척 할 생각 하지 마라. 너 남자랑 사귄다며 새끼야. 계속 사귈거면 축구 그만 둬. 게이새끼 가르치고 싶지 않다."

 

 

 

 한 순간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축구에 투자했다. 서울 지역에서 가장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고 이곳저곳에서 택운을 스카웃하려고 난리였다. 여기서 그만두기에 택운은 너무 멀리 왔다. 그렇지만 학연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학연이 축구밖에 없던 자신의 인생에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해왔다. 10년을 한 축구보다 만난지 한 달 조금 넘은 학연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너같은 천재가 그깟 사내새끼 하나 때문에,"

 

 "축구. 그만두겠습니다."

 

 "......너 그냥 못 나가. 평생 축구 못 하게 만들어서 다시는 공 발로 못 차게,"

 

 "평생 축구 안 하겠습니다."

 

 "미친놈."

 

 

 

 감독이 문을 잠궜다. 그리고 택운을 밟았다. 말 그대로 밟았다. 허벅지를 발로 차고 택운의 발목을 짓눌렀다. 발목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도 택운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독한 새끼라며 짓누른 발목을 세게 밟고 배를 찼다. 그 때서야 택운이 소리를 질렀다. 택운이 소리를 지를 때까지 할 생각이었던 건지 감독이 다시 한 번 무릎을 차고 나갔다. 감독이 나가자마자 R이 뛰어들어왔다.

 

 

 

 "정택운! 야! 괜찮아? 씨발... 조금만 참아. 119 불렀어."

 

 

 

택운의 눈 앞이 흐려졌다. 의식을 잃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학연을 생각했다. 정말이지. 지독했다.

 

 

 

 

 

 소년은 소년을 사랑하지 않았다

 

 

 

 십자인대 파열에 발목뼈가 으스러진 택운은 세 달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 중 처음 일주일은 아예 깨어나지 못 했다. 택운이 깨어났을 때 택운의 부모님이 신고해 감독이 조사받고 있었고 조사 도중 그가 전에 저질렀던 악행들이 드러났고 또다른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세 달이 지난 지금, 감독은 감옥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세 달 동안 학연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회복한 택운이 다시 학교에 갔다. 교실을 들어서자마자 많은 아이들이 달려와 택운에게 괜찮냐며, 걱정했다며 이야기를 했고 택운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차학연은?"

 

 

 

 그 소리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졌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B가 일어나 택운에게 다가왔다.

 

 

 

 "둘이 되게 친했잖아. 못 들었어?"

 

 "뭐를."

 

 "학연이 형, 유학갔어. 캐나다로. 1년 뒤에 캐나다에서 있을 콩쿠르 준비한대. 그 동안 형한테 연락 없던 거야?"

 

 

 

 택운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사라졌다. 떠났다. 버렸다. 택운을 보고 맑게 웃던 그 차학연이.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굳어버렸다. 겨우 한 달 연애했다. 첫 사랑이었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였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자리는 그대로였다. 택운이 앉자마자 모든 아이들이 흩어져 자기들이 할 일을 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렇게 전부 그대로인데 차학연만 없다. 

 

 

 

 K는 여전히 택운을 비웃었다. 내가 못 가지는 건, 너도 갖지 말아야 해.

 

 

 

 감독에게 택운의 동성연애 사실을 밝힌 건 K였다. 평소에 학연을 좋아했고 고백할 타이밍만을 재고 있다 택운에게 뺏겨버렸단 생각에 축구부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택운이 감독에게 불려갔다가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간 다음 날, K가 학연에게 다가갔다.

 

 

 

 "형 그거 알아요?"

 

 

 

 정택운 말이에요. 형이랑 사귄다는 소문이 조용히 있었나봐요. 걔네 감독님이 그 소문 듣고 정택운 불러서 진짜냐고, 진짜면 축구를 포기하라고 엄청 화냈대요. 근데 걔가 절대 아니라고, 그럴리가 없다고, 자긴 평생 축구할 거라고... 아 걔 병원간거요? 감독님이랑 대화 끝내고 나오는 길에 발 헛딛어서 실려갔대요. 별 거 아녜요.

 

 

 

 "아 그래? 아쉽네."

 

 

 

 K의 구구절절 거짓말을 듣고 난 뒤 학연의 반응은 딱 한 가지, 아쉽다였다. 제 취향이기도 했고 호기심과 관심이 공존해서 정택운이 더 알고 싶었다. 사귀게 됐는데 제대로 된 재미도 못 보고 끝나게 됐다. 학연은 바로 캐나다 유학을 결정했다. 내년 캐나다 콩쿠르에 나가려면 아무래도 본토에서 배우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학연의 담당 트레이너는 그 소식을 반겼다. 그렇게 학연은 아무런 미련 없이 택운을 떠났다.

 

 

 

 

 

*

 

 안녕. 오랜만이네. 얼마 전에 네 무대 봤어. 여전히 잘하더라고. 너는 항상 발전하고 있는게 신기해. 1년 넘게 캐나다에서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노력한만큼 빛난다고 느꼈어. 나는 축구 포기하고 대학교 가려고. 안 하던 공부하려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아마 재수, 아니 삼수는 해야할 것 같아. 어... 잘 살고 있지? 행복한 거 맞지? 나한테 말도 없이 떠나서 좀 미웠는데 지금은 아냐. 그냥 네가 행복하면 돼. 정말 난 그거면 되거든. 근데 학연아, 나 너 너무 많이 보고 싶다.

 

 

 

 

 

소년과 소년의 청춘 마침.

 

 

 

 

 

 

 

누가 그를 하찮은 형이라 했는가. by. 익명
Salvatio by. D. 에르타
꽃잎놀이 by. 허브
사랑의 죽음 by. 춘몽
소년과 소년의 청춘 by. 청
Our Happy Ending by. 창문
힐링이 필요해 by. 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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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by. 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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